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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8일. 삼일째. 올레길 7코스


오전 8시 17분. 여관방

7시 40분경에 일어나 반신욕도 하고 가볍게 몸 상태를 체크해봤다. 크게 이상이 있거나 다친 곳은 없어서 다행이다. 오늘 아침 메뉴도 역시 삼각김밥이 좋겠다.

짐을 챙긴다고 챙겼는데 한두 개 빠뜨린듯한 기분은 뭘까. 다시 한번 체크하고 오늘 일정 시작!


* 오늘 총 사용한 금액
대일밴드와 초코바 2개 1,600원
외돌개 까지 택시비 2,800원
중문 해수욕장까지 택시비 3,800원
해수욕장 짐 맡기는거 2,000원
폴라포 700원
돌아오는 택시비 11,000원
회 15,000원
술값 대략 40,000원
여관비 x 2 40,000원
총 116,900원
오늘까지 총 206,350원


29일. 사일째.


오후 2시 30분. 버스 안

어제는 참 많은 일이 있었다. 7번 코스는 최악이다. 길도 제대로 되어 있질 않고 온통 1m가 넘는 돌을 넘고 헤치고 기어다녀야 했다. 경치가 빼어난 것도 아니다. 중간마다 쉴 수 있는 곳도 없어서 쉬지도 못하고 그냥 계속 걸어야 한다.

중간에 어떤 아저씨를 만나서 이런저런 얘기를 하며 길을 걸었다. 처음엔 나에게 사탕을 줘서 참 좋았는데, 점점 하는 얘기가 가관이더라.

아. 버스 안에서 쓰기가 너무 어렵다. 나중에 써야지.


오후 4시 47분. 와하하 게스트하우스

그 아저씨에 대한 얘기를 계속 해보자. 그 아저씨는 서울에서 살다가 몇 달 전에 제주도에 왔다고 한다. 경치에 반해서 제주도로 이사까지 했다고 하더라. 그러면서 제주도 사람들에 대한 이런저런 나쁜 얘기를 시작하더니, 갑자기 빨갱이가 어쩌고저쩌고 김종필이 어쩌고저쩌고 김대중이 나쁜 놈이고 박정희가 정말 대단하고 어쩌고 저쩌고.. 아. 나와는 정 반대의 생각을 하는 사람과 정치 얘기를 한다는 것은 - 사실은 정치 얘기를 들어준다는 것은 - 정말이지 힘들다. 나중엔 세종대왕의 본 처가 레즈비언이니 뭐니 별 얘기를 다 하더라. 이 얘기가 진실인지 아닌지는 중요하지 않다. 좋은 길을 좋은 마음으로 걷고 싶은데, 왜 저따위 얘기를 들어야 하는가가 문제다.

1시간도 넘게 그따위 얘기를 들어주다 기회를 봐서 먼저 빠졌다. 역시 혼자 걷는 게 제일이다.

길을 걷다가 잠시 사진을 찍느라 멈춰 섰더니 어떤 여자가 날 추월하더라. 앞에 누군가가 있으면 따라다니기 참 편해서 그 여자를 7번 코스 끝까지 따라다녔는데, 알고 보니 엄청난 강철 체력의 소유자였다. 거의 2시간이 넘게 지치지도 않고 단 한 번의 흐트러짐 없이 잘 걷더라.

그 여자만 따라다니다 7번 코스를 끝내고 8번 코스를 1시간가량 걷다가 나무그늘 밑에서 낮잠을 잤다. 이렇게 달콤한 낮잠이 있을 줄이야. 낮잠을 자고 난 이후엔 길을 잃고 정처 없이 떠돌다 군부대에 들려 시원한 냉수 한잔을 얻어먹고 택시를 잡아타 근처 중문 해수욕장으로 갔다. 혼자 1시간가량을 물에서 놀다가 허기가 져서 서귀포 시내로 택시를 타고 되돌아왔다.

시장에들려 따돔이라고 하는 생선 2마리를 15,000원에 사서 근처 식당으로 가 회와 매운탕을 먹었다. 광어보다 맛나더라! 식당에서 회를 먹던 다른 2명의 여행자와 합석을 하고 술을 마시기 시작했다. 3명이서 10병을 넘게 마시다가 정신을 차려보니 나 혼자 어느 여인숙 안에 있더라. 여기가 어딘지 어떻게 온 지도 모른다. 일단 황급히 짐을 챙기고 나와서 회를 먹던 식당으로 돌아갔는데 손목이 허전하더라. 아뿔싸! 여인숙에서 시계와 썬글라스를 안 챙겼다!

더 큰 문제는 내가 있던 여인숙이 어디 있는지 위치도 모르고 이름도 모른다는 거였다. 게다가 어디서 다쳤는지 이마에선 피가 흐르고.. 오밤중에 눈에 보이는 여관과 여인숙을 뒤지고 다녔지만 끝내 찾지 못하고 포기. 근처에 여관에 가서 잠을 잤다.

술기운에 눈을 뜨니 아침이더라. 어제 그 횟집을 다시 찾아가서 시계에 대해 이래저래 물어보고 경찰서에 가서 분실신고를 했다. 근처 공중전화에 있는 전화번호부에서 제주도의 여관 전화번호를 몽땅 입수했다. 200여개도 넘어 보이는데 10곳 정도 전화를 하다가 이것도 포기. 주변에 있는 여관을 다시 찾아다니다가 왠지 낯익은 여관을 발견해서 들어가 봤다. 아자자! 이곳이었구나. 다행히 시계와 썬글라스를 찾을 수 있었다. 으메 좋은거

기분이 좋아 아이스크림을 하나 사 물고 pc방에 갔다. 표선에 있는 와하하 게스트하우스에 가는 게 오늘의 목표다.

버스를 타고 노트에 그간 벌어진 일들을 적다가 글씨 쓰기가 너무 어려워 잠시 눈을 붙였다. 자다가 일어나 기사 아저씨에게 위치를 물어보니 여기가 표선이란다.

후다닥 내리고 근처에 있던 하나로마트에 들어가 쥬스와 고로케를 사 먹은 후 게스트하우스에 전화를 해서 픽업을 받았다.

와하하 게스트하우스는 1박2일에도 나왔던 곳으로 시설이 참 잘되어 있더라. 세면장, 샤워장, 화장실, 주방, 세탁기, 컴퓨터 등 있을만한 건 다 있고, 다른 여행자들과 정보 공유도 할 수 있어서 참 좋다. 이곳에 며칠 머무르고 싶다.


오후 6시 40분. 침대 위

게스트하우스 앞뜰에 있는 해먹에 누워 있다가 항공사에 전화를 했다. 이유는 돌아가는 비행기를 며칠 후로 연장하기 위해서. 처음 생각보다 볼 게 많아서 월요일에 돌아가지 않고 수요일에 돌아가는 것으로 이틀 늦췄다. 비행기 값도 차이가 있어서 7,000원의 수수료를 떼고도 2,000원을 환불받을 수 있었다.


오후 11시. 침대 위

라면을 두 개 사왔는데 저녁밥과 내일 아침까지 먹기엔 왠지 부족해 보이더라. 시내에 나간다는 사람이 있어서 햇반과 3분 카레를 사다 달라고 부탁을 했다.

여행자 6명이 모여 같이 저녁을 먹고 캔 맥주도 마셨다. 어제 술 먹고 사고 친 게 있어서 오늘은 가볍게 맥주 두 캔만 마셨다. 여행 정보도 공유하고 내일 우도에 같이 갈 사람도 생겼다.

실제로는 어떨지 모르겠으나 대충 겪어본 바로는 사람들이 다들 선하고 좋더라.


* 오늘 총 사용한 금액
아침밥 뚝배기 불고기 5,000원
경찰서까지 택시비 2,200원
돌아오는 택시비 2,200원
메론맛 아이스크림 480원
pc방 이용료 1,300원
표선행 버스비 2,000원
신라면 x 2 1,200원
감귤 쥬스 600원
카레맛이 나는 햄 고로케 2,000원
햇반 1,700원
3분카레 1,050원
게스트하우스 숙박비 15,000원
총 34,780원
오늘까지 총 241,130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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